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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를 걷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사실이 하나 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다. 공주 두 곳, 익산 두 곳, 그리고 부여 네 곳을 묶은 연속유산이다. 궁남지 부여에서 이름을 올린 곳은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그리고 나성이다. 고대 한국과 중국, 일본이 주고받은 건축 기술과 불교 전파의 증거라는 것이 세계유산위원회의 평가였다. 부여 여행이 곧 세계유산 답사가 되는 셈이다. 강이 반달처럼 감아 도는 산성 부여 사람들은 금강을 백마강이라 부른다. 하늘에 정사를 물었다는 규암면의 천정대 아래에서 시작해 낙화암과 구드래나루를 지나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약 16킬로미터. 도시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감아 돌고 나서야 다시 금강이라는 이름을 되찾는다. 《삼국사기》는 이 물길을 백강이라 적었고 《일본서기》는 백촌강이라 기록했다. 백마(白馬)는 ‘큰 나라’를 뜻하니, 백마강은 큰 나라가 자리한 강이라는 의미가 된다. 백마강 그 강을 굽어보는 자리에 부소산성이 있다. 한성과 웅진을 거쳐 백제가 마지막으로 삼은 도읍 사비, 그 심장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이곳을 ‘사비성’ 또는 ‘소부리성’이라 적었다. 성왕 16년인 538년,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왕궁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다. 둘레는 약 2.2킬로미터. 해발 106미터의 낮은 산이라 산성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걷기가 수월하다. 소나무와 왕벚나무, 갈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길이 잘 나 있어 아이나 노인도 부담 없이 오른다. 부소산성 오르는 길 사비문을 지나 오른쪽 길로 접어드는 것이 정석이다. 넓은 돌이 깔린 솔숲 길을 따라 처음 만나는 곳은 삼충사다. 성충과 흥수, 계백 세 충신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어 백제의 왕과 귀족들이 계룡산 연천봉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하루를 열었다는 영일루가 나온다. 골드몽 릴게임 그 너머는 곡식 창고 터인 군창지다. 이 흙에서는 지금도 불에 탄 곡식 알갱이가 나온다. 660년 사비성이 무너지던 날의 흔적이다. 조금 더 걸으면 반월루다. 부여 읍내와 구드래 들판, 그리고 읍내를 반달처럼 감싸 도는 백마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누각 뒤편 산책로 안쪽에는 백제 때 움집을 복원해두었다. 산성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는 사자루가 서 있다. 부소산성의 정상 누각으로, 원래 임천의 관아 문루였던 것을 1919년에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이 썼다. 부소산성 오르는 길 부소산성의 절정은 낙화암이다.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가 전해지는 벼랑인데, 삼천이라는 숫자는 조선 시대 문인들의 시문에서 비롯된 문학적 표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숫자를 따지는 대신 우리는 그저 벼랑 끝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면 된다. 바로 앞에는 1929년에 세운 정자 백화정이 보인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구드래나루에서 고란사까지 오가는 유람선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풍경이 마치 그림 같다. 백화정에서 내려다본 백마강 낙화암에서 10분쯤 내려가면 고란사에 닿는다. 벼랑에서 몸을 던진 이들이 떨어진 곳은 강물이 아니라 이 절 근처 바위 계곡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넋을 달래려 세운 절이다. 이름은 절 뒤 바위틈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양치식물 고란초에서 왔다. 바위에서 솟는 고란수는 지금도 마실 수 있는데, 한 모금 마시면 삼 년이 젊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화정 천오백 년을 견딘 돌의 품격, 정림사지 오층석탑 부소산성에서 내려와 읍내 한복판으로 향하면 정림사지다. 이름 그대로 정림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도성이 함락될 때 절은 불탔고, 오층석탑만 남았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국보다. 현존하는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축에 들고,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삼국시대 석탑의 원형을 밝혀주는 유물로 꼽힌다 손오공게임예시 . 한때는 소정방탑이라 불리기도 했다. 탑신 첫 층에 ‘대당평백제비’(大唐平百濟碑)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했다고 새긴 전승 기록이다. 패망의 낙서를 몸에 새긴 채 천오백 년을 서 있었던 셈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그럼에도 탑은 아름답다. 목탑의 구조를 돌로 옮기면서 지붕돌을 얇고 넓게 펴 처마 끝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 미세한 반전 하나가 무거운 돌덩이를 가볍게 만든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침 안개 속의 이 탑을 두고 ‘우아미의 화신’이라 썼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았다는 백제 미학의 상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곧게 선 이 탑 앞에 서면 그 평가에 수긍하게 된다. 탑 뒤 복원된 강당 안에는 석불이 앉아 있다.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으로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돌로 만든 중절모를 쓴 듯한 모양새가 인상적인데, 탑은 백제 것이고 불상은 고려 때 새로 만든 것이다. 머리와 갓은 후대에 다시 올렸다. 한자리에 백제와 고려가 나란히 앉아 있는 셈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정림사지에서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관북리 유적이 있다. 부소산 남쪽 기슭의 사비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대형 건물 터와 연못, 도로 자리가 확인됐고, 얼음이나 음식을 저장하던 목곽고도 나왔다. 지금은 잔디밭과 주춧돌만 남아 얼핏 허전해 보이지만, 이 평평한 땅 아래에 백제의 궁궐이 묻혀 있다고 생각하면 걸음이 느려진다. 진흙 속에서 건져 올린 백제 정림사지에서 길을 건너면 국립부여박물관에 닿는다. 이 박물관에 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절터 발굴 현장. 주차장을 만들려고 파던 진흙 구덩이, 정확히는 목곽으로 짠 수로 안에서 이 향로가 나왔다. 천사백 년 가까이 진흙이 공기를 막아준 덕에 보존 상태가 놀라울 만큼 좋았다 바다이야기릴게임솔루션 . 부여박물관 금동대향로 높이 61.8센티미터, 무게 11.8킬로그램. 용이 머리를 치켜들어 입으로 몸체를 받치고, 그 위에 연꽃잎으로 두른 몸통이 얹히고, 다시 그 위에 산봉우리가 층층이 솟은 뚜껑이 놓인다. 뚜껑에 새겨진 봉우리만 일흔네 개, 그 사이를 인물 열두 명과 동물 마흔두 마리가 채운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사람이 있고, 호랑이와 사자, 코끼리와 낙타가 있다. 우리 땅에 살지 않는 짐승들까지 새겨 넣은 것을 보면 백제 사람들이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꼭대기에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섰다. 그 바로 아래에서 다섯 악사가 각각 소와 피리, 비파와 북과 현금을 연주한다. 연구자들은 이 향로가 도교의 신선 세계와 불교의 연화장 세계를 한 몸에 담았다고 설명한다. (좌)부여박물관?내의?동물형?토기 (우)부여박물관 내 전시 전경 향로만 보고 나오기는 아깝다. 같은 박물관에 부여 외리의 절터에서 나온 문양 벽돌들이 있다. 1937년에 여덟 종류가 한꺼번에 나왔는데, 그중 산수무늬 벽돌은 우리나라 산수화의 기원으로 불린다. 손바닥만 한 벽돌 한 장에 겹겹의 산과 나무, 구름과 물, 그리고 그 사이 오솔길을 걸어가는 사람 하나가 들어앉아 있다. 당시 사람들이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는 이 벽돌 한 장이 말해주는 셈이다. 향로가 나온 능산리 절터 곁이 부여 왕릉원이다. 능산리 고분군이라 불리다 2021년에 이름이 바뀌었다. 사비 시기의 왕과 왕족 무덤 스무 기가 야트막한 능선을 따라 앉아 있다. 봉분이 크지 않고 배치가 단정해 신라 왕릉과는 인상이 사뭇 다르다. 이곳 절터에서 석조사리감이 함께 나오면서 이곳이 왕실 사찰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능산리 고분군 왕릉원 뒤로는 부여 나성이 지난다. 사비 도성을 감싸던 외곽 성벽으로 전체 길이가 약 8킬로미터에 이른다. 왕궁을 지키는 부소산성이 안쪽 방어선이었다면, 나성은 도시 전체를 두른 바깥 울타리였다. 도성 전체를 성벽으로 감싼 계획도시. 바다이야기 먹튀 신고 백제가 사비로 옮겨 오며 얼마나 치밀하게 도시를 설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꽃이 덮은 왕의 정원, 궁남지 부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궁남지다. 궁궐 남쪽에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삼국사기》는 무왕 35년인 634년에 ‘궁궐 남쪽에 못을 파고 이십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였으며 못 둘레에 버드나무를 심었다’고 적었다. 우리나라에서 기록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인공 정원이다. 궁남지 우리가 지금 보는 못은 1965년에 되살린 것이다. 옛 규모의 삼분의 일쯤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주변 연꽃 단지까지 합치면 33만 제곱미터, 십만 평이 넘는다. 수련과 홍련, 백련을 비롯해 오십여 종의 연이 자란다. 못 한가운데 뜬 섬에는 ‘포룡정’(抱龍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무왕의 어머니가 못에 살던 용과 인연을 맺어 무왕을 낳았다는 탄생 설화에서 온 이름이다. 나무다리를 건너 정자에 오르면 사방이 물이다. 궁남지의 연꽃 궁남지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마를 캐 팔았다 해서 서동이라 불린 무왕은 신라의 사정을 살피러 서라벌에 잠입한다. 그곳에서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도련님을 밤마다 몰래 안고 간다’는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소문이 퍼지자 왕은 공주를 궁에서 내보냈고, 서동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백제로 데려왔다. 두 사람이 살림을 차렸다는 자리가 바로 이 궁남지 터다. 못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삼십 분이면 충분하다. 궁남지 물가에는 왕버들이 늘어져 있고, 그 아래로 나무 데크가 이어진다. 백제 사람들도 이 자리에서 버드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천사백 년 동안 같은 나무가 같은 물가에 서 있는 셈이다. 정원이라는 것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는지, 이 못은 조용히 대답한다. 사라진 도시를 다시 세우다 백마강 건너에는 백제문화단지가 있다. 남은 것이 터뿐인 도시를 상상으로 복원한 곳이다. 왕궁과 사찰, 마을과 고분까지 사비 도성의 모습을 재현했다 신천지게임다운로드 . 백제문화단지 정양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사비궁이 나타난다. 중심 건물인 천정전을 문사전과 무덕전이 좌우에서 받치고 회랑이 이를 두른다. 천정전은 신년 하례와 사신 접견 같은 왕실의 큰 행사가 열리던 공간이다. 실제 백제 궁궐이 이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발굴로 확인된 기단과 주춧돌의 규모를 근거로 세웠다고 한다. 가장 볼 만한 곳은 생활문화마을이다. 귀족과 군관, 중류층과 서민의 집을 계층별로 나눠 지었다.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웠다는 건축가 아비지의 집이 있고, 불상 조각가 도리의 집이 있고, 의술을 가르치던 의박사 왕유릉타의 집이 있다. (좌)백제역사문화원의 전시물 (우)백제문화단지 군관 계백의 집도 그 사이에 앉았다. 이름만 남은 사람들에게 집 한 채씩을 지어준 셈이다. 그 위쪽 위례성은 한성 백제 시기를 재현한 구역으로, 위례궁과 고상가옥, 개국공신 마려의 집이 들어서 있다. 부여는 크지 않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하루에 다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다니면 이 도시가 무엇을 남겼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무너진 절터에 탑 하나가 서 있고, 진흙 속에서 향로 한 。이 나오고, 못가에 연꽃이 핀다. 백제는 크게 말하는 법을 몰랐던 나라처럼 보인다. 부여를 걷는 일은 그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 가깝다. 포룡정 부여는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 걸린다. 부여시외버스터미널을 기。으로 부소산성과 정림사지, 국립부여박물관, 궁남지가 모두 걸어서 오갈 만한 거리에 모여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월요일에 쉰다. 백제문화단지는 부여 읍내에서 백마강을 건너야 하므로 차가 편하다. 구드래나루에서 고란사까지는 황포돛배 모양의 유람선이 오간다. 강에서 부소산 벼랑을 올려다보는 각도가 색다르다. 구드래나루터 주변으로 음식특화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구드래돌쌈밥의 쌈밥과 나루터식당의 장어구이가 유명하다. 장원막국수 장원막국수는 오래된 가정집을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린 시절 뛰놀던 외할머니댁이 생각나게 한다. 육수는 새콤하고 달콤하다. 면은 메밀 함량이 높아 가위가 굳이 필요 없다. 에 못을 파고 이십